2013년 1월 11일 금요일

다시 읽어본 노키아 CEO의 "불타는 플랫폼"


노키아. 불타는 플랫폼. 신용등급은 이미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졌고, 항간에는 과연 살아남겠느냐, 망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까지 나돕니다. 이런 판에 노키아가 4분기에 흑자를 냈다는 소식이 있어서 간단히 정리해 블로그에 올린 다음 스티븐 엘롭 최고경영자(CEO)의 ‘불타는 플랫폼' 이메일을 찾아 다시 읽어 봤습니다. 벌써 2년 전 일입니다. 엘롭의 개혁은 과연 성공할까요? 실패할까요? 2년 전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소개했던 엘롭의 이메일을 블로그에 옮겨 싣습니다. [광파리]

“우리는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습니다”, “우리 플랫폼 노키아가 타고 있습니다.”

스티븐 엘롭 노키아 최고경영자(CEO)가 (2011년 2월) 10일 사원들에게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핀란드 노키아. 세계 최대 휴대폰 메이커. 대체 이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노키아는 2월11일 새 전략을 발표합니다. 엘롭은 사원들에게 차갑고 깜깜한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촉구합니다. 이메일을 읽으면서 메모했습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의 선장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직역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살짝 의역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입수한 이메일 원문)




한 사내가 북해의 석유 굴착 플랫폼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밤 요란한 폭발음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시추 플랫폼이 갑자기 화염이 휩싸였습니다. 사내는 삽시간에 불길에 갇혔습니다. 자욱한 연기와 뜨거운 열기를 뚫고 간신히 화염에서 벗어나 플랫폼 가장자리로 탈출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봤습니다. 깜깜하고 차갑고 불길한 대서양의 물 뿐입니다.

불길이 닥쳐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플랫폼에 버티고 서 있으면 불길에 타 죽겠죠. 이걸 피하려면 30m 아래 얼음 바다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습니다. 선택해야 합니다. 뛰어내리기로 작심합니다. 평소 같으면 얼음 바다로 뛰어내릴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겠죠. 그러나 지금은 비상입니다. 플랫폼이 타고 있습니다. 사내는 뛰어내렸습니다. 구조를 받고 나서 이렇게 썼습니다. 플랫폼이 불타고 있었기에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고.

우리도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습니다.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수개월 동안 주주, 이동통신사, 개발사, 부품공급사, 그리고 여러분(노키아 직원)한테 얘기를 들었고 들은 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제가 무얼 깨달았고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우리가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플랫폼의 폭발은 한 건이 아닙니다. 불길이 여기저기서 치솟고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경쟁사들이 강한 열기를 뿜고 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닥쳐옵니다. 애플은 스마트폰 개념을 바꿔 시장을 뒤엎었습니다. 개발자들을 폐쇄적이면서도 강력한 에코시스템으로 끌어들였습니다.

2008년만 해도 300달러 이상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점유율은 25%에 불과했습니다. 2010년에는 61%로 뛰었습니다. 2010년 4분기 영업이익은 1년 전에 비해 78%나 급증했습니다. 애플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폰을 제대로 만들면 소비자들은 값이 비싸도 사고 개발자들은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다". 그들(애플)은 게임의 법칙을 바꿔 하이엔드(고가제품)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애플 뿐이 아닙니다.) 안드로이드도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약 2년만에 앱 개발사, 서비스 업체, 하드웨어 메이커 등을 끌어들이는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하이엔드로 나와 미드랜지(중가제품) 시장을 차지했고 이제는 100유로 미만의 다운스트림(저가제품) 시장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구글이 구심점이 돼 (스마트폰 업계의) 혁신 세력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저가품 시장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미디어텍은 2008년에 휴대폰 칩셋에 관한 레퍼런스 디자인을 내놓았습니다. 중국 선전지역 폰 제조업체들은 이걸로 믿을 수 없는 페이스로 폰을 생산했습니다. 이 에코시스템에서 생산한 폰이 세계 폰 판매량의 1/3을 차지합니다. 우리는 신흥시장에서 몫을 빼앗겼습니다.

경쟁사들이 우리 시장에 불길을 던지는 동안 우리는 무얼 했습니까. 뒤로 물러서 대세를 놓쳤고 (대응할) 시간을 잃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올바른 결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우리는 수년 뒤지고 말았습니다. 아이폰이 처음 나온 게 2007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비슷한 제품조차 내놓지 못했습니다. 안드로이드가 나온지도 2년 남짓 됐는데 안드로이드는 금주에 스마트폰 판매대수에서 선두로 올라섰습니다. 믿기지 않습니다.

우리 노키아도 대단한 혁신 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혁신적인 제품을) 시장에 빨리 내놓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미고(MeeGo)가 하이엔드 스마트폰 플랫폼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추세라면 금년말까지 미고 제품을 겨우 하나 내놓은데 불과할 것 같습니다.

중가제품군에는 심비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심비안 폰은 북미 시장을 비롯한 선도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게다가 심비안으로는 끊임없이 늘어나는 소비자 요구에 맞춰 폰을 개발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품 개발이 늦어지고 신제품으로 승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하면 우리는 점점 뒤처지고 경쟁사들은 점점 멀리 달아날 것입니다.

저가제품 시장에서는 중국 OEM 업체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제품을 내놓습니다. 한 직원이 그러더군요. 우리가 파워포인트 자료 다듬는 순간에 제품을 내놓는다고. 이들은 빠릅니다. 싸게 내놓습니다.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정말 당황스럽습니다. 우리는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모든 가격대에서 일대일로 맞서려고만 합니다. 매번 그렇습니다.

디바이스 싸움은 에코시스템 싸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에코시스템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만 포함되는 게 아닙니다. 개발사, 애플리케이션, 전자거래, 광고, 검색, 소셜 애플리케이션, 위치기반 서비스, 통합 커뮤니케이션 등 많은 것이 포함됩니다. 경쟁사들이 디바이스로 우리 시장을 잠식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전체 에코시스템으로 우리 몫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어떻게 에코시스템을 만들어 키울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내려야 할 결정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시장 점유율만 잃은 게 아닙니다. 소비자 마음 점유율도 잃었고 시간도 잃었습니다. 지난 화요일 S&P(스탠더드&푸어스)가 알려왔습니다. 장기 A, 단기 A-1인 우리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망으로 바꾼다고. 지난 주에는 무디스가 비슷한 결정을 했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수 주간에 걸쳐 노키아를 분석한 다음 신용등급을 낮출지 결정하게 됩니다. 신용평가사들이 왜 이런 등급 변경을 생각하겠습니까. 이들은 우리의 경쟁력을 우려하고 있는 겁니다.

노키아 제품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는 세계적으로 떨어졌습니다. 영국에서는 우리 브랜드 선호도가 20%로 떨어졌습니다. 작년보다 8% 포인트나 낮습니다. 영국에서는 다섯명 중 한 명만이 노키아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뜻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가 강세를 보였던 다른 시장에서도 떨어졌습니다. 러시아 독일 인도네시아 UAE 등등.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습니까. 세상이 온통 달라졌는데 왜 우리는 뒤처졌습니까.

저는 그동안 이것을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저는 노키아 내부의 우리 태도에도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불타는 우리 플랫폼에 가솔린을 부었습니다. 책임감도 부족했습니다. 혼란스런 시기에 회사를 정비해 끌고갈 리더십도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잇따라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우리는 빨리빨리 혁신하지 못했습니다. 내부에서 협력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플랫폼 노키아가 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진할 길을 뚫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주도권을 되찾는 길입니다. 2월11일 새 전략을 공개합니다. 회사를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합심하면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에 맞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합심하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불타는 플랫폼에서 사내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플랫폼이 불타고 있었기에 사내는 자신의 행동을 바꿨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과감하고 용감하게 발걸음을 뗐습니다. 이제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스티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