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2일 일요일

블랙베리 감원 소식과 두 가지 추억


블랙베리가 40% 감원한다는 기사를 읽다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미 상당수를 감원한 상태에서 또 40%를 감원한다면 회사 분위기는 어떨지… 떠나겠다며 짐 싸는 동료들, 이걸 지켜보는 남은 이들의 회한… 우리가 어쩌다가… 아이폰 태풍에 휴대폰 원조 모토로라가 날아갔고, 세계 1위 노키아도 날아갔고, 천하의 블랙베리도 손을 들고…

오바마 대통령도 사용했던 ‘오바마폰', 메르켈 총리도 사용했다는 ‘메르켈폰'… 쿼티자판 유행을 가져왔던 블랙베리… 캐나다 림(RIM). 사명을 블랙베리로 바꾸고도 쓰나미를 피하진 못했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니 사실상 끝입니다. 폰 전쟁에서 패배했다, 스마트폰 메이커로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이젠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썼네요.



뉴욕타임스 기사. 지난 금요일(9월20일) 전체 직원의 40%인 4500명을 감원한다고 발표. 다음주에 10억 달러 분기 손실을 발표할 예정. 재고로 쌓인 블랙베리 손실처리. 폰 판매 겨우 370만대, 매출은 애널리스트 예상 30억 달러의 절반인 16억 달러. 현금 5억 달러 줄어 26억 달러. 이날 주가 17% 떨어져 8.73달러. 4년 전 북미 스마트폰 시장의 51% 차지. 아이폰 등장 후에도 변화 외면. 쿼티자판 블랙베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뒤늦게 시도한 터치폰은 실패. 연기하고 연기한 끝에 금년 1월 블랙베리10 내놨지만 너무 늦어 실패. 최근에는 야심작 Z30 내놨으나 아무도 관심 기울이지 않았다. 회사 경영진은 매각도 생각하고 있다. 소비자는 폰 메이커 사정에 둔감하지만 이통사들은 민감하다. 앞으로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은 블랙베리의 하드웨어 비즈니스는 쓸모 없다고 판단한다. “연구개발비 떨어지면 테크 기업으로는 사망 아니겠냐.”



블랙베리와 관련해 누구나 한두 가지 추억을 가지고 있을 텐데, 저도 그렇습니다. 2000년대 초반 정보통신부 출입하던 때 캐나다대사관 직원이 만나자고 해 커피숍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블랙베리 아주 좋은 폰이다, 한국시장 폐쇄적이다, 부당하다… 열변을 토하더군요. 그때는 림(RIM)을 몰랐고 블랙베리도 몰라 기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삼성전자가 블랙잭이란 쿼티 폰을 미국에 수출한다며 보도자료를 보내왔습니다. 블랙잭? 블랙베리와 비슷하네, 쿼티자판이고…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 캐나다 등 북미에서 블랙베리가 돌풍을 일으키자 삼성이 짝퉁을 냈던 겁니다. 이름까지 비슷한 블랙잭. 짝퉁이든 아니든 제법 팔렸다고 들었는데 결국 림이 삼성을 제소했죠.

블랙베리가 아직 망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폰 나오기 전에 깃발 날렸던 폰 메이커 중에 성한 곳은 삼성 말고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선두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한테 팔렸고, 모토로라는 구글한테 팔렸고, 소니에릭슨은 양대 주주가 갈라서 소니가 떠안았고… LG는 최고경영자가 바뀌고 3년쯤 고생한 끝에 간신히 살아났고… 그리고 블랙베리.

생각해 보면 위기는 늘 인기가 정상에 올랐을 때 시작됐습니다. 모토로라는 레이저 슬림폰으로 깃발을 날린 뒤 후속 모델을 성공시키지 못해 급속히 쇠퇴했고, 노키아는 심비안폰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휩쓸다가 아이폰 태풍을 만나 급락했고, 블랙베리는 블랙베리 향에 취해 지금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삼성도 이미 위기가 시작됐는지 모릅니다. [광파리]


One more thing. 애널리스트 반응. “명백히 재앙이다. 블랙베리가 미리 알려준 이번 분기 매출이 월스트리트 예상의 절반밖에 안된다.” “(블랙베리) 인수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인수 후보들도 가치가 거의 없다고 볼 것이다. 정말 정말 어려운 상황이다.” “(블랙베리는) 무슨 조치든 취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회사를 파는 게 유일한 대안이라고 본다.” “벼랑 끝으로 몰렸다. 어느 누가 곧 사라질 게 뻔한 플랫폼을 떠안으려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