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5일 수요일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에 ‘귀환’한 것은 아니다


국내 일부 매체가 마이크로소프트 새 CEO 임명 기사에 ‘빌 게이츠의 귀환'이란 제목을 달아놓은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난다, 기술고문으로 CEO한테 자문하며 회사 일에 좀더 많이 관여한다. 이 두 가지 팩트 중 어느 쪽을 더 중시해야 할까요? 이사회 의장에서 기술고문으로. 권한이 약해졌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외신을 뒤져봤습니다. 대부분 빌 게이츠가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난다’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테크크런치는 새 역할에 초점을 맞춘 제목을 달긴 했죠. 저는 최근 사트야 나델라가 CEO로 선임될 것이란 기사를 소개하면서 게이츠가 이사회 의장에서도 밀려나는구나...생각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왜 ‘귀환'이 아닌지 설명해 놨습니다.

워싱턴포스트 기사. 마이크로소프트는 나델라를 CEO로 임명했다고 밝히면서 빌 게이츠가 귀환한다는 소문도 확인했다.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 기술과 제품 방향을 잡는데 ‘좀더 적극적인 역할(more active role)’을 할 거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나델라가 컨슈머 부문 경험이 부족해 빌 게이츠의 자문을 요청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맞았습니다.


나델라는 마이크로소프트 재직 22년 동안 주로 엔터프라이즈 부문에서 일했습니다. 최근까지 클라우드 컴퓨팅과 엔터프라이스 소프트웨어 부문을 맡아 대단한 실적을 올렸죠. 그러나 하드웨어나 컨슈머 부문 경험은 부족하다고 하고... 그래서 이사회 측이 'CEO를 맡아 달라'고 하자 빌 게이츠의 기술자문을 받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발표와 소문만 놓고 보면 ‘빌 게이츠의 귀환'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그동안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일에 전념했고 파트타임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 일을 했습니다. 앞으론 좀더 적극 관여할지... 빌 게이츠의 자문이 나델라한테 도움이 될지... 혹시 물러날 때 모양 사납지 않게 배려해준 것은 아닌지...

다시 워싱턴포스트 기사.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이츠가 CEO에서 물러난 2008년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다. 스티브 발머 체제에서 ‘디바이스 & 서비스'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게이츠는 사실상 6년 동안 테크(IT) 산업에서 벗어나 있어서 복귀할 준비가 안돼 있다. 지난달에는 평생 자신의 재단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겠다는 말도 했다.

게다가 게이츠는 퍼스널 컴퓨터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현재 마이크로소프트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추세는 PC에서 벗어나고 있다.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게이츠는 최근 수년 동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역할을 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 문제에 대해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시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데 대해 빌 게이츠도 책임 져야 한다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CEO인 스티브 발머가 책임 지는 마당에 이사회 의장한테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죠. IBM 출신 사외이사인 존 톰슨은 스티브 발머가 사임 결정을 내리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빌 게이츠가 회사 일에 좀더 관여할 가능성은 있고, 제품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겠죠. 빌 게이츠는 의장 때는 20% 시간을 쏟았지만 기술고문으로는 33%를 쏟겠다고 했습니다. 뭔가 새로운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귀환'이란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의장은 CEO한테 야단도 칠 수 있고 의사결정도 하지만 기술고문은 자문해줄 뿐입니다. [광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