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6일 일요일

스티브 잡스는 ‘혁신자의 딜레마’를 우려했다


일요일 아침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보냈다는 이메일을 읽다가 재밌는 내용이 있어 공유하기 위해 메모합니다. 애플-삼성 간 특허 재판 과정에 공개된 이메일인데, 발신 시점이 죽기 약 1년 전인 2010년 10월24일 새벽 6시12분으로 표시돼 있습니다. 암투병 중인 사람이 꼭두새벽에 일어나 회의에서 무슨 말을 할지 깨알 같이 메모했다니...

애플에는 ‘100인 회의'란 게 있습니다. CEO, 간부 등 100명 정예 멤버로 구성된 전략회의로, 신제품, 전략 등에 관해 토론합니다. 잡스의 메일은 이 회의에서 발언할 내용을 메모한 것으로, 무엇보다 “포스트 PC”, “클라우드", “구글과 성전" 등이 눈길을 끕니다.


맨 앞에 새해(2011년) 전략이 있습니다. 100인 회의 신규 멤버 비율까지 언급한 걸 보면 암투병 중에도 세세한 것까지 챙겼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특히 “포스트 PC”에 관해 꽤 자세히 메모해 놨습니다. 애플 매출에서 포스트 PC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66%나 되고 6개월 이내에 아이패드가 맥을 추월할 것이란 메모도 있습니다.

이메일에는 '포스트 PC'에 대한 정의를 내려놨습니다. “더 많은 모바일(더 작고, 더 얇고, 더 가볍고)+커뮤니케이션+앱+클라우드 서비스”. 잡스는 포스트 PC 시대에는 클라우드가 기본이라고 봤습니다. 잡스는 죽기 100일쯤 전인 이듬해 6월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무대에 올라 마지막 키노트를 합니다. 이날 키노트의 핵심은…

아이클라우드(iCloud)였습니다. 이걸 직접 발표하고 싶어 무리를 했던 것이죠.

잡스의 이메일 메모에는 “2011년은 클라우드의 해”란 표현도 있습니다. “우리가 디지털 허브란 컨셉을 만들었다"는 구절도 보입니다. “PC가 주소록 캘린더 북마크 사진 음악 동영상 등 모든 디지털 자산의 허브"란 구절도 있는데 그 다음 구절이 중요합니다. “디지털 허브(우리 세계의 중심)가 PC에서 클라우드로 옮겨간다."

이 정도 설명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잡스는 더 덧붙여 놨습니다.

PC는 이제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팟터치 등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클라이언트에 불과하다. 애플이 “혁신자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있습니다. “애플이 너무 오래 낡은 패러다임에 매달릴 위험이 있다”. 애플은 잡스가 떠난지 2년 반이 지나도록 뭔가를 보여주지 못했는데… 우려대로 가는 걸까요?

잡스는 클라우드 서비스에서는 구글을 따라잡고 뛰어넘어야 한다(catch up to Google cloud services and leapfrog them)고 썼습니다. 우리의 모든 서비스를 묶어야 한다(tie all of our products together)고 썼습니다. 이런 걸 생각하면 눈이 감기지 않았겠죠. 그래서 젓가락처럼 깡 마른 몸으로 무대에 올라 '아이클라우드'를 발표했을 테고요.

특히 '모든 서비스를 묶어야 한다'는 대목이 놀랍습니다. 구글에서는 이로부터 6개월 후에 래리 페이지가 CEO로 복귀해 구글의 각종 서비스를 통합하기 시작했죠. 마치 잡스의 이메일을 훔쳐보기라도 했던 것처럼. 물론 클라우드가 기본입니다. 어떤 폰에서 찍은 사진으로 자동으로 백업해주고...15기가(GB) 스토리지가 공짜이고, 사진 업로드는 표준 사이즈라면 무제한 공짜. 또 전면 클라우드 기기인 크롬북으로 판을 바꾸려고 합니다.



아이클라우드는 과연 구글 클라우드를 캐치업 했나요?

덧붙이자면 “2011년엔 구글과 성전(Holy War)”란 대목도 눈에 띕니다. 스티브 잡스 전기를 보면 “핵전쟁"이란 표현을 썼는데 이건 아이폰을 베낀 안드로이드 기업들을 대상으로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이고, 구글과의 성전은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애플보다 앞서가는 구글을 따라잡고 추월하기 위한 전쟁을 말합니다. 이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죠.

저가 아이폰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아이팟터치를 기반으로 아이폰3GS를 대체할 저가 아이폰을 개발한다'고 씌여 있습니다. 애플이 작년말 저가 아이폰 ‘아이폰5c’를 내놓았는데, 너무 꾸물거렸던 게 아닌지… 스티브 잡스가 2010년 10월 언급했는데… 더구나 팀 쿡은 아이폰5c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했다가 수정하는 실수까지 했죠.

스티브 잡스 이메일 중 주로 앞부분만 소개해 드렸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더 버지 기사에 첨부된 이메일을 꼼꼼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메일 첨부합니다. [광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