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2일 월요일

잭 마, 영어강사 그만두고 172조원짜리 기업을 일군 사내

잭 마(馬雲). 1964년생, 한국나이 50세. 알리바바 창업자이자 회장. 알리바바가 미국에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면서 잭 마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잭 마는 항조우에서 태어났고, 대학입시에서 두 번 낙방, 입사시험에서도 번번히 고배를 마셨죠. 항조우 어느 대학에서 월급 12달러 받고 영어/무역 가르쳤던 그가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인이 됐는지.
몇일 전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 잭 마에 관한 글을 재밌게 읽었는데 짬을 내지 못해 이제야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아마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간추린 게 아닌가 싶은데 제대로 알고 싶다면 원문을 찾아서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글을 중심으로 잭 마가 어떤 인물인지 정리합니다. 위키피디아도 참고했습니다.
잭 마는 20대 후반 대학강사를 그만두고 통역회사를 차렸습니다. 1995년. 한국나이 서른한 살 때 사업 차 처음으로 미국에 갔는데 친구가 “인터넷”이란 것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것이 인터넷에 있다는 말과 함께. 잭 마는 인터넷에서 ‘맥주'를 검색했답니다. 그런데 중국어로는 아무 것도 뜨지 않더래요. 영어로만 떴겠죠.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중국 기업 명단을 담은 ‘차이나 페이지스'라는 인터넷 회사를 차렸습니다. 중국 최초의 인터넷 관련 회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4년 후 두번째 인터넷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게 바로 알리바바입니다. 지난 6일 미국에서 IPO를 신청했는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라고 해 화제가 됐습니다.
알리바바는 전체 주식의 12%를 공개합니다. 이를 위해 알리바바 기업가치를 평가했더니 1680억 달러(=172조원). 이것의 12%니까 200억 달러쯤 됩니다. 그러니까 단숨에 미국 증시에서 20조원을 빨아들이는 겁니다. 종전 최대 IPO는 196억5천만 달러. 잭 마의 지분은 8.9%. 가치평가가 제대로 됐다면 150억 달러, 15조원이 넘습니다.
잭 마는 대학입시에서 두 차례나 낙방했다고 합니다. 알리바바를 설립한 뒤에도 교사가 되려고 공부했고, 아직도 코딩 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2000년대 중반 알리바바가 중국 시장에서 미국 이베이와 경쟁할 때 언론은 그를 “미친 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말하는 매너가 점잖지 않고 목표가 터무니없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잭 마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도 왜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싸움닭”이었다고 하네요. 자기보다 큰 상대도 결코 무서워한 적이 없다고. 외국인 관광객들한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답니다. 외국인을 만나 영어를 배워볼 요량으로 매일 호텔로 가곤 했다고 합니다. 영어 방송을 들으려고 라디오도 샀다니까 집념이 정말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학을 못했다네요. 수학 점수가 낮아 대학입시에서 두 차례 낙방. 세번째 도전 끝에 항조우사범대학에 들어갔고 1988년에 졸업했습니다. 졸업 직후엔 KFC 매장 매니저를 포함, 여러 군데 지원서를 냈지만 거절당했답니다. 대학입시에서 낙방, 입사시험에서 또 낙방. 그래서 대학 영어강사를 했는데 월급이 12달러=1만3천원.
어렸을 땐 싸움닭, 청소년기엔 입시 낙방, 입사 낙방.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러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중국에서 수출 붐이 일면서 영어 잘하는 사람이 실력 발휘할 때가 온 겁니다. 잭 마는 통역회사를 설립했고, 1995년 사업차 미국을 방문했는데 거기서 인터넷이란 걸 처음 접하고 중국에 돌아가 인터넷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처음에 시도했던 ‘차이나 페이지스’는 별로였다고 합니다. 1995년은 사실 중국에서 인터넷 붐이 일기엔 너무 빨랐습니다. 한국에서 이재웅씨가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한 해가 1995년이고, 이해진씨가 네이버 설립한 해가 1999년이었으니까요. 잭 마는 4년 후인 1999년 미국 닷컴 붐을 보고 두번째 인터넷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잭 마는 친구 17명을 아파트로 불러들여 알리바바닷컴(Alibaba.com)이라는 온라인 장터를 만들었습니다. 수출업자들이 제품을 등록하면 각국의 바이어들이 둘러보고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인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10월 골드만삭스가 500만 달러, 소프트뱅크가 2천만달러를 투자하는 등 자금도 몰려들어왔습니다.
잭 마는 말솜씨가 좋다고 합니다. 그가 자신의 꿈에 관해 얘기하면 빠져들게 된다고. 동기부여도 잘했던 것 같습니다. 가족처럼 똘똘 뭉치도록 리더십을 발휘했다네요. “우리는 젊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직원들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잭 마는 부모의 성향을 물려받아서 그런지 무대에 올라 재주 부리길 좋아했고 회사 분위기를 쾌활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매년 큰 강당에 임직원들을 모아놓고 장기자랑대회를 연답니다. 직원들은 여기에 참가하려고 수주 동안 연습하고. 또 매년 새로 결혼한 임직원들을 웨딩복 입은 상태로 모아놓고 축하해 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실수도 있었습니다. 회사는 급성장했고 돈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2001년 알리바바 미국사무소를 폐쇄하고 국제담당부서 직원들을 전원 해고했습니다. 그러나 잭 마가 모험을 감행했기에 2000년대 중반 이베이의 중국 장악을 막을 수 있었죠. 타오바오(Taobao)는 세계적으로 트래픽 20위 안에 드는 사이트가 됐고 지난해에는 알리바바의 티몰(Tmall)과 합쳐 거래금액이 24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246조원.
잭 마는 2013년 CEO에서 물러났습니다. 후임은 부사장으로 일했던 조나단 류. 잭 마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CEO에서 물러나면 더 편할 줄 알았는데, 회장이, 좋은 회장이 되려면 CEO보다 훨씬 더 바빠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답니다. 잭 마는 미국에서 기업공개(IPO)를 신청한 뒤 직원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고 합니다.
“유례없이 힘든 일이 닥치고 압박이 가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극복하고 우리의 미션과 문화를 지켜나갈 것이다", “우리가 살아남았던 것은 전략이 탁월했기 때문도 아니고 일을 잘했기 때문도 아니다, ‘세계 어디서든 비즈니스를 좀더 편히 하도록 만든다'는 우리의 미션을 고수했고 ‘고객우선' 가치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잭 마와 알리바바의 성공스토리를 담은 영화 ‘양쯔강의 악어---알리바바 이야기'가 오는 28일 인터넷에서 공개됩니다. Crocodile in the Yangtze - The Alibaba Story. 분량은 77분. 그렇게 긴 편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일제히 발매합니다. 그리고... 알리바바가 한국 시장에 진출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디면 '중국 직구'가 유행하겠죠.
잭 마에 관한 글을 읽다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잭 마라는 사람, 정말 대단합니다. 왜소한 싸움닭, 대학입시와 입사시험에서 번번히 낙방… 그러나 자기보다 훨씬 큰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영어를 배우려고 매일 호텔을 들락거렸고, 회사 분위기 띄우려고 분장 하고 무대에 설 줄도 알았고... 근성과 정열의 기업인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왜 이런 스타 기업인이 없는지 안타깝기도 합니다. 스타가 없는 건 아니겠죠. 이해진도 있고, 김범수도 있고, 김정주도 있고… 그러나 국내 성공 테크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전면에 나서길 꺼립니다. 스타 기업인을 껴안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탓도 있겠죠. 스타 기업인이 많이 나와야 젊은이들이 이들처럼 되려고 뛰어들 텐데…
알리바바가 이베이를 물리치고 중국 시장을 지켜냈다는 부분… 한국에도 옥션이 있었죠, 이베이에 넘어갔지만. 네이버가 구글의 한국 시장 장악을 막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네이버의 폐쇄적인 시스템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아무튼, 테크 분야에서 2000년 전후의 활기를 되찾고 스타 기업인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한 가지 덧붙입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나 월스트리트저널 사이트에 접속하면 잭 마의 어린 시절 사진, 알리바바 초창기의 사진이 많이 있습니다. 저작권 때문에 이런 사진을 올리지 못하고 ‘양쯔강의 악마' 트레일러 화면을 캡처해 첨부합니다. [광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