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4일 수요일

크레이그 페더리기 "슈퍼맨"으로 빵 떴다

크레이그 페더리기가 “슈퍼맨”으로 떴습니다. 페더리기는 애플 소프트웨어 개발 책임자. 부사장(SVP). 지난 2일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 에서 열린 애플 개발자 컨퍼런스 ‘WWDC 2014’ 기조연설의 약 70%를 도맡아 했습니다. 2시간 동안 막힘없이, 자신 있게, 유머를 섞어가며, iOS8과 OS X 10.10 요세미티를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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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조연설은 “페더리기 원맨쇼”였습니다.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페더리기를 “슈퍼맨"이라고 칭했습니다. 2012년까지만 해도 iOS 새 버전 발표는 스콧 포스탈이 주도했고 페더리기는 잠깐 무대에 올라 포스탈이 맡긴 부분만 설명하고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포스탈이 엉터리 애플지도를 내놓은 뒤 퇴사하면서 ‘페더리기 독무대’가 열렸습니다.
‘WWDC 슈퍼스타’ 페더리기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요? 애플에서 아이폰 OS인 iOS와 맥 OS인 OS X 개발을 관장하는 책임자라면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애플 디자인 책임자로 스티브 잡스의 절대신임을 받았고 팀 쿡 체제에서도 중요한 일을 하는 조니 아이브 부사장(SVP)과 더불어 팀 쿡의 왼팔 오른팔이라고 할 만합니다.


페더리기 기조연설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페더리기는 중간중간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을 끼워넣었습니다. '핸드오버' 기능을 설명할 땐 이메일에 드래그&드롭으로 사진을 앉혔는데 사진 속 인물은 에디 큐 부사장이었습니다. 노래방에서 헤드폰을 끼고 눈을 감은 채 마이크를 입에 대고 하늘을 향해 노래하는 모습이 매우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조니 아이브 부사장 사진도 보여줬는데 청중들은 보자마자 웃었습니다. 아이브는 항상 빡빡머리를 하고 다니는데 페더리기의 수북한 머리숱을 합성한 사진이었거든요. 아이폰에 걸려온 전화를 맥 컴퓨터로 받을 수 있다는 걸 설명할 때도 “어머니 전화인 것 같다"면서 “받을 상황이 아닌데. 정말 멋진 분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내 시간”이라고 말하며 끊죠.
하나만 더 들겠습니다. 애플이 최근 3조원에 달하는 거금을 주고 비츠 뮤직을 인수했죠. 페더리기는 기조연설 도중 “최근에 입사한 직원한테 전화를 걸겠다”며 공동창업자 닥터 드레를 부릅니다. 전화가 연결되자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은 9시에 시작합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닥터 드레와의 통화는 수년 전 스티브 잡스가 했던 기조연설을 연상시키지요. 페더리기는 플로어 청중이 웃자 박수와 환호를 유도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자칫 경박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딱딱한 소프트웨어 이야기를 하면서 이 정도 유머는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반응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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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크 페더리기. 1970년생. 개띠. 1967년생인 조니 아이브보다는 세 살 아래입니다. 스티브 잡스 생전에 기조연설을 주도했던 필 쉴러 부사장(SVP)이 ‘구세대’라면 페더리기는 ‘떠오르는 신세대’라고 할 수 있죠. 쉴러는 1960년생으로 팀 쿡과 동갑, 인터넷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담당하는 에디 큐 역시 이들과 연배가 비슷합니다.
페더리기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UC버클리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학사와 석사. 졸업 후에는 넥스트(NeXT)에서 일했습니다. 넥스트는 스티브 잡스가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뒤 설립했던 컴퓨터 회사. 여기서 개발했던 OS가 애플로 넘어가 OS X의 기반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페더리기는 스티브 잡스의 '유배시절 동료'라고 할 수 있겠죠.
페더리기가 애플에 입사한 건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1999년 퇴사해 소프트웨어 회사 아리바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됐죠.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9년 애플 복귀. 2011년에는 맥 소프트웨어 책임자가 됐고, 2012년 스콧 포스탈 퇴사 후엔 아이폰 소프트웨어까지 맡았습니다.
페더리기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iOS7을 발표한 작년 WWDC 때였습니다. iOS7은 스콧 포스탈이 떠나고 조니 아이브가 하드웨어 디자인은 물론 소프트웨어 디자인까지 맡은 뒤에 나온 첫 OS입니다. 페더리기와 조니 아이브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iOS7도 호평을 받았고 페더리기의 기조연설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번 WWDC 기조연설이 페더리기 독무대가 된 것은 이런 상황이었기에 가능했겠죠. 팀 쿡은 기조연설 앞부분과 뒷부분, 그리고 중간중간 이어지는 부분만 맡았습니다. 매셔블 기사를 보면 전체 112분 중 78분(약 70%)을 페더리기가 했고, 팀 쿡이 맡은 부분은 17.6%로 20분도 안됐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실무자 시연과 동영상 상영시간.
팀 쿡이 무대에 있는 동안에는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쿡의 목소리가 차분했지만 너무 느려 박진감이 떨어졌습니다. 페더리기가 애써 띄워놓은 분위기를 망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페더리기가 다소 지나칠 만큼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을 많이 연출한 것도 이런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마디로 이번 WWDC 기조연설은 테크(IT) 세상에 페더리기를 확실하게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프리젠테이션을 스티브 잡스 만큼 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디자인 책임자 조니 아이브와 협업을 잘했을 것이란 느낌도 줬고, 영리하고 리더십도 있을 것이란 인상도 풍겼습니다. 물론 좀더 지켜봐야겠죠. [광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