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7일 월요일

구글에서 실력자로 떠오른 순다 피차이는 누구인가?

구글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페이지가 최근 중대 결정을 내렸습니다. 안드로이드, 크롬과 구글앱스를 총괄하는 순다 피차이 부사장(SVP)한테 구글의 거의 모든 제품을 총괄하게 했다고 르코드가 보도했습니다. 기존 3개 부문은 물론, 연구개발, 검색, 지도, 구글+, 커머스/광고, 인프라 등의 부문도 피차이한테 보고하게 했습니다.

도대체 피차이가 어떤 인물이기에 이런 중책을 맡았을까요?



놀랍게도 피차이는 구글에 입사한지 10년 밖에 안됐습니다. 피차이는 구글이 “1기가(GB)”를 기치로 걸고 G메일(Gmail)을 내놓은 2004년 4월1일 입사했습니다. 그때 피차이는 1기가 G메일이 만우절 농담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이메일 저장공간 1GB는 파격적이었죠. 입사 10년만에 구글에서 월급쟁이로는 최고 실력자가 됐습니다.

순다 피차이. 1972년생. 한국나이 마흔세살. 인도 동해안 공업도시 첸나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GE 전기공 출신으로 전자부품회사를 설립해 경영했죠. 어머니는 결혼하기 전에는 속기사였습니다. 피차이는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했나 봅니다. 명문고등학교를 거쳐 명문 인도기술대(IIT) 카라구푸르 캠퍼스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피차이에 대해 “호기심 많고 질문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피차이가 열두 살 때 집에 다이얼 전화를 들여놨는데 한 번 돌린 전화번호는 거의 암기했다네요. 한 번은 옆집 아저씨가 자신이 기억해야 할 전화번호를 잊어먹고는 피차이 집으로 달려와 피차이한테 물었다고 합니다. “얘야, 그 번호 뭐였지?

부모는 피차이가 인도기술대를 졸업하자 무리를 해서 미국 유학을 보냈습니다. 저축해둔 100만원쯤 되는 돈을 탈탈 털어 미국행 비행기표를 샀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피차이는 스탠포드대 석사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에는 60달러짜리 백팩 살 돈도 없어서 중고를 사기도 했다고 하죠. 스탠포드대에서는 재료공학과 반도체를 공부했습니다.

피차이는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교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그랬던지 석사과정 마친 뒤 반도체 회사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스에 입사했습니다. 여기서 멈췄다면 피차이는 지금 그렇고 그런 엔지니어로 살고 있겠죠. 그런데 피차이는 짐을 싸서 미국 동부로 갑니다. 펜실베니아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칩니다.

엔지니어가 경영학까지 공부했으니 ‘문무(文武)'를 겸비한 셈입니다. 인도 유학생 중에는 이런 식으로 문무를 겸비한 선수가 꽤 있습니다. 피차이는 와튼스쿨 마친 다음엔 뉴욕에서 컨설턴트로 일했습니다. 매킨지에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일했죠. 그 다음 다시 서부로 가서 구글에 입사했고,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중책을 맡은 겁니다.

저는 피차이를 단 한 번밖에 인터뷰 한 적이 없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릅니다. 첫인상은 그야말로 ‘순둥이'였습니다. 아주 순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친화력, 창의성, 리더십 등을 두루 갖췄나 봅니다.

피차이는 구글에 입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크롬 브라우저를 직접 개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별로 좋지 않은데 차라리 우리가 직접 개발하자… 엔지니어들이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던가 봅니다. 그걸 피차이가 윗분들한테 보고하고 설득했고, 입사 4년 후인 2008년 9월2일 크롬을 공개해 대박을 터뜨렸죠.



구글은 이 크롬을 브라우저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고 OS로 진화시킵니다. 3년 후인 2011년 6월에는 크롬 OS와 이를 탑재한 크롬북을 내놓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시작한 겁니다. 윈도 아성이 워낙 탄탄해서 쉽지는 않겠지만 크롬북은 미국 교육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걸 주도했던 이가 피차이입니다.

피차이는 2012년에는 구글앱스 부문까지 맡습니다. 이어 2013년 3월 또 한 번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집니다. '안드로이드 아버지'로 불렸던 앤디 루빈이 안드로이드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나고 피차이가 크롬과 안드로이드를 모두 맡게 됐습니다. 전 세계 스마트폰의 8할에 안드로이드를 탑재하니 ‘모바일 킹'이라고 할 만하죠. 피차이는 올해 초 CES 기간에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을 만나 타이젠 개발하려고 애쓰지 말고 안드로이드 협력을 강화하자고 압력을 넣었다고 알려졌습니다.

피차이는 한때 트위터 CEO로 거론됐고, 스티브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 CEO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후에는 피차이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습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는 같은 인도계인 사트야 나델라를 선임했죠. 항간에는 구글이 피차이를 붙잡았다는 소문도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피차이를 붙잡은 미끼가 뭐였는지 궁금합니다.

피차이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구글 경영진에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인도기술대 출신 인도계 부사장(SVP) 두 사람이 떠났습니다. 구글+ 책임자였던 빅 군도트라는 퇴사했고, 사업개발 등을 맡았던 니케시 아로라는 소프트뱅크로 갔습니다. 검색 전문가로 '구글 펠로우'인 아밋 싱할만 검색 책임자로 남아 인도기술대 후배 피차이한테 보고합니다.

구글 창업자이자 CEO인 래리 페이지는 구글의 다양한 제품에 관해서는 피차이한테 보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회사의 미래와 관련해 ‘더 큰 그림(bigger picture)’를 그릴 거라고 합니다. 9개 부문 책임자들이 피차이한테 보고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피차이가 구글을 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피차이, 정말 대단한 친구입니다.



한 가지 덧붙입니다. 제가 피차이 인터뷰를 했던 건 2011년 6월이었습니다. 구글코리아가 기자 너댓명을 피차이와 마주앉아 이것저것 물어보게 했습니다. 당시는 구글이 크롬북을 내놓은 직후라서 과연 그게 되겠느냐는 질문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피차이는 인도에 계신 부모님한테 크롬북을 줬는데 잘 쓰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광파리]

(추가)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피차의 강점으로, 공감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협업을 잘하고, 그래서 인재들이 몰리고, 상황판단 잘한다... 등을 꼽았습니다. 무엇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