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3일 수요일

쿠팡의 1조원 투자유치와 광파리의 씁쓸한 추억

몇 일 전 쿠팡이 소프트뱅크로부터 1조원 남짓 투자를 유치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 일처럼 기뻤다. 한국에서도 초대형 투자 유치 사례가 나오는구나,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가능하구나, 젊은이들이 좀더 적극 창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씁쓸했다. 5년 전의 아픈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IT전문기자 시절이었다. 2010년 7, 8월쯤. 취재원과 저녁 먹다가 “소셜커머스라는 게 뜨고 있다. 난리가 아니다. 티켓몬스터 뿐이 아니다. O도 생겼고 O도 생겼고… 업체 수가 스무개는 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거 대박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층취재를 해 보고 싶었다. 그때까진 어느 매체도 소셜커머스를 크게 보도하지 않았다.

곧바로 취재를 시작했다. 제대로 취재해서 정확하게 전하고 싶었다. 당시 취재수첩을 찾아보긴 그렇고. 티켓몬스터와 쿠팡을 취재한 날은 뚜렷이 기억한다. 비가 내렸고 사진을 찍었기에 더더욱… 그걸로 한국경제신문 1면 톱과 3면 한 페이지를 발랐던 날도 기억한다. 초판을 찍은 직후 편집국장한테 야단맞고 3면을 완전히 다시 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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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를 만나러 간 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강남 갤러리아백화점 인근 어디란 말을 듣고 알려준 주소대로 갔는데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곳에서 멎었다. 신 대표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갤러리아 앞 주유소 앞으로 오라고 알려줬다. 주유소에 도착했더니 신 대표가 우산이 없었던지 비에 젖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티켓몬스터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정신없이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저것 어지럽게 널려 있고 젊은이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회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신 대표 자리는 따로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미국에서 그루폰이 뜨기 시작하는 걸 보고 서둘러 귀국해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얘기, 와튼스쿨 후배들을 끌어들였다는 얘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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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몬스터 취재를 끝내고 쿠팡으로 갔다. 어딘지는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다지 멀진 않았다. 티켓몬스터와는 달리 쿠팡 사무실은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고… 윤선주 이사(윤증현 전 장관의 딸)랑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눴다. 서비스를 막 시작한 신예였지만 야심만만했다. 하버드 선후배 3명이 창업했다는 말도 들었다.

두 업체만 취재했던 것은 아니다. 수없이 전화를 돌렸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내린 판단은… 티켓몬스터가 질주하고 있고, 후발주자 중에서는 쿠팡이 눈에 띈다, 재밌는 것은 두 기업 모두 유학생 출신이 시작했다, 만약 둘이 패권을 다툰다면 와튼스쿨과 하버드의 대결이 되는데… 재밌다. 일주일 가량 취재한 뒤 기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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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네 꼭지로 나눠서 썼다.
1면 톱은 전체적인 현황을 정리한 스트레이트.
3면 메인박스는 해설. 소셜커머스 의미와 문제점.
3면 서브박스는 화제(와튼스쿨과 하버드의 대결).
3면 미니박스는 '소셜 커머스의 원조 그루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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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초판을 읽으면서 흐뭇했다. 데스크 6년, 기획부장 2년을 마친 ‘늙은 기자'가 현장을 빨빨거리며 쓴 따끈한 기사가 1면 톱과 3면 한 페이지를 발랐으니 ‘한 건 했다'는 기분이었다. 어떤 후배가 “선배, 잘 읽었어요"라고 말해줘서 기분도 우쭐했다.

그런데… 편집국장이 찾는다길래 국장석으로 갔더니 다짜고짜 짜증을 냈다. 3면 서브박스에 쓴 ‘와튼스쿨과 하버드의 대결' 기사가 맘에 안들었던 모양이었다. “이놈들 왜 써 주신 거에요?” 이 질문을 듣는 순간 몹시 불쾌했다. 왜 썼냐고? 전문기자가 써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 썼지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꾹 참고 설명했다. 일주일 동안 취재해본 결과 두 기업이 믿을 만 했고 매우 특이한 사례여서 썼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장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다시 쓸께요”라고 말했다. 자리로 돌아와 3면 기사를 완전히 다시 썼다. 서브박스를 메인박스에 합치고 서브박스를 새로 썼다. 국장 얘기에도 일리는 있지만 바꾸고 싶지 않았다. 날려야 하는 서브박스 기사가 너무 아까웠다. 퇴근도 포기하고 저녁식사도 포기한 채 밤 9시까지 '판갈이'를 했다.

이때 처음으로 ‘전문기자’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전문기자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기자 노릇 해먹기 어렵겠다는 생각… 때가 되면 깔끔하게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쿠팡이 1조원 투자유치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5년 전에 썼던 기사를 찾아봤다. 그러나 ‘와튼스쿨(티켓몬스터)과 하버드(쿠팡)가 붙는다'는 기사는 끝내 찾지 못했다. 신문사는 대개 최종판(대개 밤중에 서너 차례 판갈이를 한다)만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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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굳이 옛날 얘기를 꺼낸 것은 아픈 추억이 생각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권위주의를 청산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 초 디캠프 센터장을 맡은 이후 철저하게 ‘권위 파괴’를 시작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센터가 권위주의 냄새가 나서는 안되고 그런 식으로 일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관련 책도 읽어보고 강연도 들었는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세계는 지금 창의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누가 먼저 창의적인 제품/서비스를 내놓고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매우 중요해졌다. 정보기술(IT)이 전통산업과 결합하면서 모든 산업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이 혁신을 외면하는 전통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운 국면으로 가고 있다. 혁신을 하려면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권위주의와 수직적 사고다. “하라면 하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식의 상사가 버티고 있는 한 혁신을 기대하긴 어렵다. 상사는 상석에 앉아 장황하게 잔소리를 하고 아이디어를 내야 할 젊은이들은 머리를 박은 채 낙서만 하는 회의 모습… 아직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낡은 경험을 자랑삼아 장황하게 늘어놓는 상사. 이른바 “꼰대”다. 꼭 나이가 기준은 아니다. 환갑을 넘긴 사람 중에도 혁신적인 이가 있고, 40대 젊은이 중에도 꼰대는 있다. 아무튼… 꼰대들이 변해야 혁신은 가능하다. 혁신하려면 꼰대들이 스스로 변하든지 꼰대들을 밀어내는 수밖에 없다. [광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