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3일 수요일

‘스타트업 코리아’ 인종차별에 발목 잡혀서야…

한국경제신문 오늘자에 실은 스타트업 칼럼 전문을 싣습니다. (광파리)

안양에 있는 스타트업(초기창업기업) G사는 최근 보물 같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잃었다. 베트남 출신 엔지니어인데 “미국으로 가겠다”며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 대표는 만류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가 떠나겠다고 말한 속내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베트남인 CTO는 수학경시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수학 천재”라고 했다. 한국 대기업에서 그만두자마자 영입했는데 실력이 좋아 대표는 늘 “우리 보배"라고 말했다. 그런데 CTO는 1년도 안돼 “미국으로 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견딜 수 없다고 했다.

G사 대표는 “아이들한테 ‘외국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라’고 가르치지 않은 어른들 책임이 크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외국인 노동자가 밀린 임금 달라고 요구하자 동전 2만3000개를 준 악덕 사업자도 있었지 않냐. 외국인한테 이렇게 배타적인 나라가 어떻게 실리콘밸리와 같은 세계적인 창업 허브가 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운영하는 창업지원센터 디캠프(D.CAMP)에서 센터장으로 일하다 보니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나 마케터로 일하는 외국인을 자주 만난다.

지난해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인도인 엔지니어는 “한국에서 7년 살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은 외국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을 갖췄다. 한류의 진원이고 홍대 앞 같이 젊음을 발산하기 좋은 공간도 많이 있다. 그런데도 우수 인재들이 서울 대신 실리콘밸리를 택하는 이유가 뭐겠냐? 유색인에 대한 차별도 원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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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외국 인재들이 한국 스타트업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사례도 있다.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스튜디오시드는 작년 여름 중국인 유학생을 인턴으로 채용했다. 한국말도 잘해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작년 가을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스타트업 경진대회에 참가했는데 이 인턴이 발표해 입상했고 중국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까지 받았다. 김수 스튜디오시드 대표는 “중국 시장을 개척할 요량이라면 중국말도 하는 한국인보다는 한국말도 하는 중국인을 앞세우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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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의사 연결 플랫폼을 운영하는 닥스MT는 키르기스탄 고려인 3세 형제를 개발자로 채용했다. 형 세르게이가 먼저 입사했다. 세르게이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입국해 원룸 생활을 했다. 어느 날 모집공고를 보고 응모했는데 대표가 “내 앞에서 코딩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한국인 개발자 2명은 거절했고 세르게이는 기꺼이 응했다.

닥스MT 대표는 세르게이를 채용한 뒤 매우 만족한다. “실력이 좋고 성실하다”고 했다. 세르게이는 닥스MT 입사 후 고국에 있는 아내와 아이를 데려왔고 이어 동생도 와서 닥스MT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닥스MT는 ‘5월 데모데이’에서 우승해 디캠프에 입주했다. 세르게이는 “한국 생활에 만족하느냐?”고 물으면 “좋다"며 싱긋 웃는다.

세계적으로 ‘창업을 통한 혁신 경쟁'이 불 붙으면서 스타트업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룩셈부르크 장관이 한국 창업계를 돌면서 핀테크 스타트업들한테 ‘러브콜'을 했고, 중국의 경우 성(省) 단위, 도시 단위 대표단이 방문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 국내 거주 외국인과 유학생 및 이민자들의 창업을 돕기 위해 다음달 용산전자상가에 서울글로벌창업센터를 연다.

외국인을 괄시해 우수 인재가 한국을 떠나게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월드밸류서베이(WVS)가 80개 국가를 대상으로 다른 인종에 대한 관용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7개 등급 중 6등급, 최하위권에 속했다. 일본(3등급) 중국(4등급)과 비교해도 훨씬 낮다.

김도현 국민대 교수는 “한국에서 창업하길 원하는 외국인 유학생이 많은데 대부분 포기한다"며 “이들이 기꺼이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인재들이 널리 분포돼 있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계 2세이고,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인 사티아 나델라와 구글 CEO 순다 피차이는 인도 출신, 테슬라 창업자인 일런 머스크는 남아공 출신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실리콘밸리를 닮고 싶다면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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